무사만리행의 콤모두스 황제는 폭군이면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빌런이다. 악행은 분명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이유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미친 황제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콤모두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정상이 아니다.'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화신이라고 믿고, 검투를 놀이처럼 즐기며, 사람의 목숨조차 자신의 흥미를 채우는 구경거리로 소비한다.
황제라기보다 광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냥 쓰러뜨려야 할 악역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감정이 생겼다.
분명 잔인한데도 거짓말은 하지 않고,
오만한데도 비겁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기존의 폭군과는 조금 달랐다.
콤모두스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콤모두스의 일관성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영웅담으로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하지도 않고,
정치를 위해 가면을 쓰지도 않는다.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끝까지 미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일관성 덕분에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는다.
특히 나루를 대하는 태도는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존재로 보지만,
나루만큼은 자신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간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벗'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으로 콤모두스를 단순한 폭군으로 보기 어려워졌다.
그에게 강함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대등한 상대에게는 오히려 존중을 보낸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악행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황제로서도 결코 좋은 통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신념을 상황에 따라 바꾸는 사람은 아니었다.
최고의 빌런은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선명한 사람이다
요즘 작품에는 사연 많은 악역이 많다.
과거의 상처가 있고,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동정을 받기도 한다.
콤모두스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독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끝까지 콤모두스답게 살아간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 나루에게 자신의 목을 맡기며 명예로운 최후를 원한 모습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그 장면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도 "악인이지만 멋있었다"는 평가가 꾸준히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콤모두스를 정의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폭군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워하면서도 인정하게 된다.
좋은 빌런은 독자가 응원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패배하는 순간조차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내게 콤모두스 황제는 바로 그런 빌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