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의 나화진은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과감한 방식을 선택한다. 그래서 정의로운 주인공이라는 평가와 위험한 인물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따라다니는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속이 시원한 해결사처럼 보였다
참교육을 처음 읽었을 때 나화진은 기존 학원물에서 보기 어려운 주인공이었다.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고, 가해자에게도 강경하게 대응했다.
답답하게 상황만 지켜보는 어른들과 달리 직접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처음에는 통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독자가 나화진을 정의로운 해결사로 받아들인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법과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모습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괜찮은 걸까.
나화진은 정의를 추구하지만, 그 과정은 늘 편하지 않았다
나화진이 특별한 이유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개인의 이익보다 피해 학생을 보호하려고 움직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상대에게 공포를 주고, 압박하며, 때로는 폭력도 주저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된 지점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학교폭력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화진처럼 강하게 나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폭력을 당연한 수단처럼 사용하는 모습이 마냥 편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까지 모두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끝까지 고민이 남았다.
그래서 나화진은 영웅보다 논쟁적인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참교육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역시 나화진이다.
그는 분명 피해자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방식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듯한 모습도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캐릭터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조금 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장면이 있었다면 더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졌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화진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다.
그는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폭력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화진을 완벽한 정의의 상징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한 목적과 위험한 수단 사이에서 계속 논란을 만들게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바로 나화진이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낳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